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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집- 이종형

by 인사이드아웃 2018. 4. 3.


이효리가 낭송하는 3편의 시






바람의 집-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 치는 이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섬, 사월의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아래
제 몸의 피 다 솥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의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다만
살같을 싸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섬, 4월 바람은 당신의 뼈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당신의 뼈 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로 부터 시작되는 
당신의 바람의 집 이었던 것.




생은 아물지 않는다 / 이산하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먼저핀다

어느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벤다.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 김수열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천둥 번개에 놀라 이리 휘어지고
눈보라 비바람에 쓸려 저리 휘어진
나무 한그루 심고 싶다.

나이테마다 그날의 상처를 촘촘히 새긴
나무 한그루 여기 심고 싶다. 

머리부터 어깨까지 불벼락을 뒤집어 쓰고도
모질게 살아 여린 생명 키워내는 선흘리 불칸낭
한때 소와 말과 사람이 살았던,
지금은 대숲사이로 스산한 바람만 지나는
동광리 무등이왓 초입에 서서
등에 지고 가슴에 안고 어깨에 올려
푸르른 것들을 어르고 달래는 팽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되어버린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대창에 찔려 옹이가 되버린 상처마저 혀로 핥고
바람이 가라잖으면 바람을 부추기고
바람이 거칠면 바람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 틔어 못새들 부르고
여름이면 늙수그레한 어른들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는
그런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살아천년 죽어 천년 푸르고 푸른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내일의 바람을 열려 맞는 항쟁의 마을 어귀에
아득한 별의 마음을 노래하는
나무 한 그루 싶고 싶다.